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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Reading)

천천히 깊게 읽기

Wimacademy 2017. 12. 9. 18:55




나는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섬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시간이 나면
그저 멍하니 산과 바다를 바라보는 것이
나에게는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위락이었다.
모든 사물에 대한 '판단'을 일시적으로 멈추고
머리와 마음을 온전히 비운 채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자연을 관조하는 시간이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 참이 지난 후였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원 수업을 청강하면서
인도의 고전어인 산스크리트어, 팔리어와
중국의 고전어인 한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군대를 전역한 이후인
학부 3학년 때부터는
티베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고전어를 공부하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고전어가 야기하는 어려움의 기저를 이루는 것이, 
난해한 문법이나 어휘가 아닌
얄팍한 기존 지식을 토대로 
고전어를 번역하고 해석하려는 
선입견이라는 사실이었다. 
고전어의 번역과 해석 과정을 방해하는 것은 
바로 성마름이나 갈급함이 야기하는 
속독(速讀) 습관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을 반추하며 
자연을 관조하듯 고전어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이해되지 않는 하나의 문장을 붙들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저 응시하기만 했고, 
때로는 며칠 동안을 두고 응망하기도 했다. 

천천히 깊게 반복해서 읽는 연습을 하는 동안
처음 읽었을 때에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것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했다. 

지독(遲讀)과 재독(再讀)이야말로
한정된 정보로부터 많은 지식을 유출하는 
최적의 인풋 방법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천천히 세부적인 사항들을 관찰하면서 
인식의 영역을 확장하고, 
다시 읽는 과정을 통해 이해의 방식을 다각화하며,
판단을 한시적으로 유보한 상태에서
과거의 기억과 대조하며 
깊이 사고할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느린 독서법은 
뇌가 사물을 생각하는 매커니즘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뇌가 
최초의 정보를 확인하고 기억하는 과정은 
다음의 4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제1 단계: 정보의 확인
제2 단계: 정보의 이해
제3 단계: 정보의 판단
제4 단계: 정보의 기억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제1 단계부터 3단계에 이르는 과정이
과거 정보의 기억(제4 단계)과의 대조를 통해 작동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본질과 무관한 판단에 좌우되지 않고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판단을 중단해야 한다.

청색 LED(Light Emitting Diode, 발광다이오드)의 개발을 통해
지난 2014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나카무라 슈지는 
그의 저서인  
『끝까지 해내는 힘』 (비즈니스북스, 2015)에서


"어릴 때는 
조금은 멍하게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어딘가 어리숙해 보일지 모르지만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아이가 
사실은 성공할 확률이 높다.
나는 해변에서 
혼자 멀거니 바다를 바라보던 아이였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렇게 혼자서 생각하기를 좋아했다.
그 습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라고 말했다.

뇌가 사물을 생각하는 매커니즘과
뇌가 문자를 이해하는 매커니즘이 
유사하기 때문에,
간헐적인 판단 정지의 과정을 포함하는
지독과 재독은
책 내용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적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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