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꽃길 보다는 가시밭길이 좋다. 물론 꽃길이 편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버스나 지하철에 승차해 목적지까지 여유롭게 갈 수 있지 않은가. 때론 창 밖에 보이는 풍광들을 보며 때론 음악을 감상하며 때론 세상을 관조하며 느긋함을 만끽할 수도 있다. 하지만 꽃길의 안온한 단상에만 젖어 있으면 배우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한 여름에 그을릴 일도 한 겨울에 칼 바람을 맞을 일도 없을 것이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고생 없이 무탈하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성장할 기회를 박탈 당한다는 말이 아닌가. 지금은 고인이 된 내가 존경하는 한 철학자는 살아 생전에 제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의 두 갈래 길이 있으면 항상 어려운 길을 선택하도록 하거라. 그 길이 옳은 길일 가능성이 ..
나는 물질에 대한 동경이 없다. 사람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름을 얻고 싶지도 않고, 권능을 구하고 싶지도 않으며, 지식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이십대 10년, 삼십대 4년 동안은 그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내린 작은 결론은 삶의 관점에서 삶을 향유하지 않고, 죽음의 관점에서 삶을 경작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일 아침에 죽는다면 돈과 명예가 필요할 리 없지 않은가.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내 삶은 이걸로 충분해" 라는 자족 뿐이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오직 본인 만이 감지할 수 있는 감정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 하나 뿐이다. 삶은 짧고 죽음은 길다. 삶은 장거리 주행을 위해 중간에 경유하는 휴게소이자, ..
10대에는 야망을 가졌다. 야망이란 한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설정한 목표를 살아 생전에 달성하는 것이다. 20대에는 꿈을 꿨다. 꿈이란 한 개인이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위해 설정한 목표를 죽기 전에 성취하는 것이다. 30대인 지금은 뜻을 품고 있다. 뜻이란 나 자신과 타인의 행복을 위해 설정한 목표를 비록 살아 생전에는 이루지 못하더라도, 후대의 누군가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중요한 일은 불과 몇 십년 만에 완성할 수 없다. 수 백년, 수 천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일본 파나소닉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전 회장이 300년 앞을 내다보고 경영을 했듯이, 나는 300년 이상을 내다보고 나의 일을 하려고 한다. 내가 심는 이 사과 나무가 꼭 나의 입 속에 들어갈 필요는 없다. 누구의 입속으로 들어갈지는..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선생은 제자에게 외면 당하지 않고,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기업은 고객에게 버림 받지 않으며,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지도자는 국민에게 비난 받지 않는다. 제자는 스승의 역량 보다 자신을 위하는 마음을 중요시 하고, 고객은 기업의 기술 보다 자신들을 위하는 진정성을 중시하며, 국민들은 지도자의 카리스마 보다 자신들을 위한 헌신을 우선시 한다.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마음을 얻는 것이고,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 진정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세상에 기여하겠다는 순수한 열정이 필요하다.
가끔 버스나 지하철을 탄다. 버스나 지하철은 비교적 편리하다. 출발 지점과 도착 지점만 정확히 알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문제는 편리함에서 기인한다. 지하철과 버스는 우리에게 실수할 기회, 실패할 기회를 철저하게 박탈한다.시간과 공간에 대한 물리적 감각을 단련할 기회를 앗아간다. 시행착오가 야기하는 문제점을 상쇄하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할 기회를 빼앗아간다. 지하철과 버스는 노선 대로 운행한다. 경로를 이탈하는 법이 없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시간 엄수도 비교적 철저한 편이다. 노선표 대로 운행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실제로 그런 인생을 향유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생사는 잦은 경로의 이탈과 시간 초과가 일상 다반사다. 인생에는 지하철이나 버스도, 네비게이션도 없다..
연꽃은 진흙 속에 처해도 물들지 않고, 오아시스는 사막 한 가운데 있어도 메마르지 않으며, 진주는 시궁창에 빠져도 가치가 격하되지 않는다. 인간은 툰드라와 같이 가혹한 환경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태어나지만, 마음 그릇이 커지고 기량이 일취월장함에 따라 황무지를 흑토로 개간할 수 있는 강건한 존재로 변모한다. 처염상정. 인간에게는 누구나 더러운 곳에 기거해도 물들지 않는 힘이 있다. 일체유심조. 세상 모든 것은 우리 마음이 그려낸 한 폭의 그림일 뿐이다. 지건한 인간은 진흙에 내주해도 결코 흙빛에 잠식당한 채 부지불식간에 더럽혀지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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