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졌다. 인생이란 게 이런 걸까. 커다란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한 송이의 꽃에 불과한 게 우리 인간의 삶인데, 영원히 피어 있으려고 욕심을 부리고땅에 떨어지지는 않을까 공포에 휩싸인 채 피어 있는 순간에도 노심초사하는, 인생이란 게 이런 걸까. 사철 피어 있는 꽃은 없고, 떨어진다고 해서 꽃의 가치가 반감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굳이 영원히 존재하려고 욕심을 낼 이유도 허무에 사로잡힌 채 공포의 노예로 전락할 필요도 없다. 그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알기만 하면 된다.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을 때인지, 아니면 가야할 때를 알고 소리없이 떨어져야 하는지. 벚꽃은 졌다.
실패와 좌절, 그리고 절망으로 얼룩진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 힘이 되는 건 현 상황을 타개할만한 해결책이 있다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는 목소리가 아니다. 사실, 그런 건 고통을 해소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마음 속에 화약을 품은 사람들에게는 장밋빛 미래를 제시하는 목소리가 오히려 음울한 상상을 부추겨 화약을 점화시키도록 충동질할 뿐이다. 그렇다면 힘이 되는 말은 뭘까? 그것은 바로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는 말이다. 삶이 힘들어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 건 결코 대단한 성공을 꿈꾸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토록 힘든 삶도 종국에는 죽음으로 귀결될 거라는 자명한 진실을 알고 있어서 고난을 감내할 수 있는 게다. 타국의 식민치하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을 경험하면서도 암울한 질곡에 신..
삶은 욕망이고, 죽음은 공포다. 삶 때문에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도, 죽음 때문에 공포의 시녀로 전락해서도 안된다. 철학과 사상이 빈곤한 인간은 생존을 위한 탐욕 때문에 감내할 수 없는 고통으로 신음하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절대자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일삼는 광신적 굴종자로 타락한다. 욕망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멈춰야 한다. 공포로부터 초연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라봐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바라볼 줄 아는 인간은 삶을 위해 욕망의 노예가 되지도, 죽음 때문에 공포에 압도된 채 굴종자가 되지도 않는다.
인생을 살다 보면 고난과 시련은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온다. 그리고, 그 파도는 우리가 죽기 전까지는 결코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삶이란 너무나도 고달픈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삶을 고해, 즉 괴로움의 바다에 비유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가 매일 무너지는 것은, 또 우리가 매일 고통스럽다고 여기는 이유는 비단 결코 건널 수 없는 파도 때문만은 아니다. 그 보다 우리에게 더 큰 괴로움을 야기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파도는 그저 파도일 뿐, 거기에는 어떤 의도도 없고, 즐거움이나 괴로움이 깃들어 있지도 않다. 거기에서 괴로움을 발견하는 이유는 우리의 두뇌가, 마음이 계속해서 부정적인 마음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눈앞에 나타난 현상은 그저..
옷을 입고 음식을 먹는 데는 돈이 든다. 집을 장만하는 데는 그 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고, 인간을 교육시키는 데는 그 보다 더 많은 돈이 든다. 그럼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돈이 드는 일이 뭘까? 그건 사람의 의식 수준을 고양시키는 일이다. 학교 교육으로는 기껏해야 가방 끈의 길이만 늘릴 수 있을 뿐, 그 크기를 키우고, 그 깊이를 깊게 만들기가 어렵다. 의식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독서도 필요하고, 경험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성찰하는 인간을 만드는 일, 밖을 바라보는 관찰에 그치지 않고, 안을 들여다보는 성찰에 도달하는 인간을 키워내기란, 게다가 일평생 성찰하는 인간을 양성하기란 여간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과학기술과 통신기술이 발달한다고..
사후에 이뤄지는 모든 판단은 마치 과거에 발생한 사건을 예견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인간이란 존재는 그다지 현명하지 않아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모른다”가 아니라 “알 수 없다”는 것, 이게 지난 30여 년을 반추해 보면서 내가 내린 잠정적인 결론이다. “정답” 같은 건 애시당초 없었을지도 모르고, “해답”도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나기에, 그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한편으로는 가벼운 마음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가까이 하고, 그들의 고견을 들으면서 제 3지대로 조금씩 발걸음을 옮길 뿐이다. 모르겠다. 아니 알 수 없다. 어디로 갈지. 이 길이 어디에서 끝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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