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코 모레티의 <직업의 지리학>
최근에 읽고 있는 책들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책은
단연,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캠퍼스의
경제학 교수인
엔리코 모레티가 쓴 <직업의 지리학>이다.
저자는
미국을 지리적으로 크게 삼분한 후,
지리적 요건에 따라
학력, 경제력, 정치적인 성향 등이
상당 부분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이 특별히 흥미로운 점은
토머스 프리드먼이
그의 저서인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주장한 내용에 대해
방대한 구체적 사례를 제시하면서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주장한 요지는
21세기 초반의 세계화를 분석해 본 결과,
세계는 역사적, 지리적 분포와는 무관하게
상업적인 관점에서 공평한 기회의 장이며,
모든 경쟁자들이
공평한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세계가 평평해졌다는 프리드먼의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엔리코 모레티가 실증하고 있는 구체적 현실은
프리드먼의 주장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가 차례로 제시한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학력, 직업에 따른 소득, 정치적 성향 등에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소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지역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에 사느냐,
미시건 주에 사느냐?
같은 캘리포니아 주라 하더라도
산호세에 거주하느냐
아니면 새크라멘토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학력, 직업에 따른 소득, 정치적인 성향이
판이하다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모레티는
자신의 주장이 정당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시도의 하나로서
'혁신 중심지' 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그 실례로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언급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최초의 창업지인
뉴 멕시코주 앨버커키에서
위싱턴주 시애틀로 회사를 이전하면서,
두 지역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앨버커키에 정착했던 사업 초창기에는
두 지역 사이의
대학 졸업자 수, 직업에 따른 소득 격차 등이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시애틀로 이주해서 사업적 성공을 거두고 난 후,
두 지역 사이에는
극심한 학력과 소득의 격차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저 그런 도시 가운데 하나였던 시애틀을
혁신 중심지로 변모 시킨데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모레티는
혁신 중심지 개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비교역'과 '교역' 이라는
두 가지의 개념을 차용한다.
미용업이나 병원 등의
지역 중심의 비즈니스는
지역을 벗어나서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비교역적'인 분야이고,
첨단 기술 산업 등은
해당 지역 뿐만 아니라,
타지역이나 타국가를 상대로도
비즈니스가 성립 가능하기 때문에
'교역적'인 분야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첨단 기술 산업과 같은 교역 분야는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회사나
그 회사에 종사하는 직원들 뿐만 아니라,
회사가 있는 지역 사회에도
커다란 경제적 기여를 한다는 사실이다.
첨단 기술 회사 주변에는
미용실이나 식당, 병원 등이
차례로 들어서기 때문에,
간접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효과가
상당히 크다는 말이다.
전체 산업 구조상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혁신 기업의 비율은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극소수의 첨단 기술 산업이
지역 사회의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와
간접적인 일자리 창출 효과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부모님이나 교수님,
어른들께서 말씀하시는
안정된 일자리는
물론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상당히 중요하다.
한 인간의 생존과 사활이 걸린 문제이니 만큼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는 것을 두고
비판할 권한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하지만,
안정적인 일자리에 안주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현실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상당히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2017년 8월 3일 <한국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러시아 등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10대들의 꿈이 공무원인 곳은 없다.
한국의 인구는 줄어들고, 가계 빚은 늘어나는데
모두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으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되겠느냐" 고 반문했다.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
스타트업을 하기에는
정부의 규제가 다소 엄격하기는 하지만,
수십 년 후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많은 젊은이들이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치고 나가는 편이
그 자신이나 지역 사회,
나아가 국가에 기여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오리 브래프먼과 주다 폴락은
그들의 저서
<최고의 조직은 어떻게 혼란을 기회로 바꿀까>
에서
흑사병의 창궐이 어떻게
중세 암흑 시대를 마감하고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는데 일조했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지식을 철저히 경시하던
중세 카톨릭 교회는
흑사병으로 수도원이 유린 당하고,
절반 이상의 수사들이 죽어 나가자,
극약처방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 지식에 정통한
인문학자들을 성직자로 받아들이게 된다.
성서 이외의 외부 지식을 철저히 배격하던
기존의 성직자들의 무리에,
인문학자 출신의 새로운 수사들이 가세하자,
수도원은 오히려
지적 인브리딩에서 탈피해 활력을 되찾고,
이후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는데
기폭제가 되었다고 한다.
흑사병의 창궐이
암울한 유럽에 르네상스를 촉발시킨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던 것처럼,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오늘날의 참담한 현실이
도리어 혁신 기업을 탄생시키기에
유리한 조건이라고 한다면,
나만의 망상일까?
나는
지금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기회의 시기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참담한 현실에 구애 받지 않고,
마음껏 유랑하면서
혁신적인 일을 시도하고자 한다.
처참한 실패를 한다면
실패로부터 경험을 쌓게 될 것이고,
성공한다면
또 다른 미지의 세계에 도전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