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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서점에 갔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는 책들을 훑어보니, 

매끈매끈하고 둥글둥글하고 부드러운 책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편리한 사상을 

주입할 목적으로 만든 책들이라 그런지 

다면성을 확보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역력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이 반드시 다면적일 필요가 있을까? 

 일면적이어서는 안되는 이유라도 있는가?"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작가이기도 한  

가토 슈이치(1919~2008)는

"어떤 깊은 사상도 일면적이지 않은 것은 없다.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사상은 비누처럼 둥글둥글하거나 원만하지 않고, 

오히려 서리 같이 날카로운 칼에 가깝다.    

심오한 사상을 담은 책을 읽을 때면,  

이도파죽(利刀破竹, 예리한 칼로 대나무를 쪼개다) 

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마치 

저자가 예리한 칼을 들고

나를 순식간에 베어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책은 좋은 책일 공산이 크다.

좋은 책이 제공하는 충분한 자극을 

독자가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기만 한다면, 

탁 트인 인식의 지평을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둥글둥글한 비누 같은 책은 범람하는데 반해, 

이도 같은 사상을 담은 책은 희유해 진다는 

척박한 현실에 있다. 


상업 출판을 하지 않고서는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출판사와,  

대중의 기준에 맞춰 글을 쓰지 않고서는

자신의 책을 출판하기 어려운 작가의 

이해 관계가 맞물리면서 발생한 문제다. 


미국의 작가이자 대학 교수인

로저 로젠블렛(Roger Rosenblatt)은 

글쓰기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이런 충고를 건넨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글을 쓰면 그건 삼류입니다.

 누군가는 여러분의 작품을 사랑할 테고, 

 누군가는 싫어하겠죠. 

 어느 쪽이 됐든 작가는 열심히 쓸 뿐입니다." 


현실은 물론 중요하다. 

생존의 토대가 허물어지면, 

그 위에 

삶이라는 집을 축조할 수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기만 한다면, 

자기 자신의 사상은 

부지불식간에 사장되고 말 것이다. 

한편으로는 

철저한 현실 감각을 유지하되,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의 기준을 확립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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