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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고토.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게
인간의 본성이다.

용이한 것은 수용하고,
난해한 것은 배척하는 악습이 
인간이라는 종 전체에 만연한 폐단이다.

문제는
편의성을 추구하는 인간 특유의 귀소 본능이
분야를 막론하고
실력 향상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자명한 이치로부터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조심스레 추론해 볼 수 있다.
아스팔트와 같이 쉬운 길은 가짜일 확률이,
가시밭길 같이 어려운 길은 진짜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집을 그릴 때 
대개 지붕부터 그린다.
실제 건축에서 지붕은 제일 나중에 축조되지만,
그들에게는 
건축의 인과적 순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이에 비해,
어른들은 
집을 축조하는 순서를 명징하게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명철한 인식은
이론적 차원에만 국한될 뿐,
실제적 차원에서는 송두리째 방기되고 있다.
깡그리 무시되고 있다는 말이다.

몇 년 전,
글을 잘 쓰고 싶다는 한 후배가 나를 찾아 왔다.
나에게 그 비결을 물어 오길래 
대뜸 한 마디를 했다.
"일단 써봐. 써서 가지고 와."

그 후배는 
한 동안 글을 쓰지도, 나를 다시 찾아 오지도 않았다.

그가 나를 찾아 온 것은 
2년이 지난 어느 가을 날이었다. 
석사 논문 초록 심사를 위해 글을 작성해야 했지만,
지도 교수가 논문 지도에 성의를 보이지 않자,
고육지책으로 나를 다시 찾아 온 터였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단 한 마디 뿐.
"일단 써봐. 써서 가지고 와."

이번엔 달랐다.
시일이 급박하니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는 심정으로
2주일 만에 초고를 완성해 온 것이다.

나는 몇 시간에 걸쳐서
주제 선정, 연구 방법론의 설정, 
자료의 타당성 등에 대해
내 역량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도움을 주었다.

초록은 무사히 넘겼지만,
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그는 몇 개월을 더 비지땀을 흘려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후배처럼 머리로 글을 쓴다.
글 잘 쓰는 비결에 대한 
이론을 습득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지만,
정작 중요한 
글을 쓰는 일은 등한시 하고 만다.

문제는
이론의 부재가 아니라
실천 의지의 부족에 있음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다.

영국의 과학철학자 마이클 폴라니는
그의 저서인 <개인적 지식>과 <암묵적 영역>에서 
형식지와 암묵지의 개념을 언급했다.

형식지는
언어로 표현 가능한 영역에 있어서 
전달이 용이하고, 
이론을 통해 도달할 수 있지만,

암묵지는 
언어도단, 불립문자의 영역에 있어서
전달이 불가능할 뿐더러,
직접 경험 하지 않고서는 
감조차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낸 
일각의 형식지와
수면 아래에 침잠한
빙산 전체인 암묵지로 이루어져 있다.

글쓰기는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있다.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은
빙산의 일각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은
빙산 전체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각각 의미한다.

스승은 제자에게 이론을 통해 형식지를 전하고,
제자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암묵지를 획득하는 것,
나는 이것이 글쓰기의 학습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스승은 조금 밖에 가르칠 수 없지만,
제자는 많이 배울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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