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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음성 언어)과 글(문자 언어).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이 두 가지가 있다.
인간은
세계 도처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도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지구상에는
약 7,000여 개의 말이 생겨나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 384~322)는
『정치학』 머리말에서
모든 동물 가운데 인간만이
로고스, 즉 이성과 말을 가지고 있다고 썼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것은
“이성 또는 언어 능력,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
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어원학적으로 살펴보면,
그리스어 로고스(logos)의 어원인
동사 ‘레게인(legein)’은
모으다’ ‘세다’ ‘말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 명사형인 로고스(logos)도 ‘
수집’ ‘계산’ ‘말’(語)을 뜻한다.
단지
소리를 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 것 가운데 특정한 것을 선택하고,
이를 의미를 가진 말로 표현한다는 측면에서,
‘말하는’ 것은
인간을 보통의 동물과 구별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영문학 교수인
존 닐(John D. Niles, 1945)은
1999년 출간한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 The Poetics and Anthropology of Oral Literature』에서,
“인간은 이야기하려는 본능이 있고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이해한다.” 고 설명하면서,
호모 나랜스 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라틴어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뜻하는
호모 나랜스는
진화 과정상의
새로운 인류를 지칭한다기 보다는
디지털 시대에서
인류를 새롭게 정의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호모 나랜스는
영어의 스토리텔러(storyteller)에 해당하는 말로,
사실 정보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보다는,
자신의 관점에서 가공하고, 공유하는 사람을 뜻한다.
호모 나랜스는
주로 디지털 공간에서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생산, 공유하기 때문에
디지털 호모나랜스’로 불리기도 한다.
그들은
정보를 수동적으로 전달받기 보다는
관심 분야의 정보를 검색하거나 수집하고,
이야기를 재구성해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능숙하다.
호모 나랜스 라는 용어가 생기기 오래 전에,
미국 작가 벤 존슨(Ben Johnson, 1918~1996)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언어는 사람을 가장 잘 표현한다.
말을 하여라.
그래야 내가 당신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존 닐이 이 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쓸 때보다는 말할 때 더 독창적이다.” 는
독일의 소설가
장 파울(Jean Paul, 1763~1825)의 말처럼,
사람들은 확실히
글을 쓸 때보다 말을 할 때,
훨씬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아마도
말이 글보다
형식과 규칙의 제약으로부터
훨씬 자유롭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일 것이다.
호모 나랜스들은
일정한 형식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관심 분야에 대해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재조명함으로써
극도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말은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이고,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표현하고자 하는 본능이며,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말은 강력한 영향력도 가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사천 년 전(기원전 2400년 전),
고대 이집트의 현자
프타호텝(Ptahhotep, BC. 2400년 경)은
『현자 프타호텝의 교훈』에서
말의 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잠언을 남겼다.
“강해지도록 화법의 달인이 되어라.
사람의 힘은 혀에서 나오며, 말은 싸움보다 강하노라.”
그는
혀에서 나오는 언력이
육체에서 나오는 무력보다 강력하다는 이유로,
후손들에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히는데 힘쓸 것을 당부했다.
실제로,
이 교훈서의 중심 주제는 ‘완전한 말’이다.
프타호텝은
말이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완전한 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완전한 말’ 이란
올바른 몸가짐과 태도를 갖추고,
지혜와 올바름을 전달하는 말을 의미한다.
그는
말이 지혜와 올바름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런 말은 쓸데없는 수다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프타호텝은
겸손과 경청이라는
두 가지 덕목을 갖출 때,
비로소 완전한 말을 할 수 있다고 믿었고,
완전한 말을 할 때,
무지한 자를 이길 수 있고,
양심의 길을 따를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행복에도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일 겸손한 태도로
타인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가장 천박하고 저속한 충동에 귀를 기울인다면,
불행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타호텝은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고결한 말을 남겨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라고 가르친다.
오스트리아의 시인
리하르트 폰 샤우칼(Richard von Schaukal, 1874~1942)도
말이 가진 영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가장 널리 퍼진 신앙은 말이다.”
그의 말대로,
정치인이 거머쥔 어떤 권력도,
발명가가 고안하고,
사업가가 유통시키는 어떤 도구도,
말 만큼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그것도 오랜 시간 동안 행사하지는 못했다.
특히,
인터넷과 과학 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
말은
삽시간에
세계 도처에 퍼져
누구도 예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독일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에서
떠돌이 노동자 생활로 평생을 보낸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Eric Hoffer, 1902~1983)도
『변화의 시련The Ordeal of Change』(1963)에서
말의 영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
“성직자나 예언자, 지식인 등 말을 잘하는 사람은
군 지휘자나 정치가, 사업가보다
우리 역사 속에서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말로 산을 옮길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말은
생각을 전달하고,
감정을 자극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행동을 유발하는 등 아주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인간 사회에서 승리는
강한 자나
빠른 자,
지식이 풍부한 자가 아니라,
대개 말 잘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바람둥이는
부드러운 혀로 사랑을 쟁취하고,
경험이 풍부한 세일즈맨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으로 상품을 판매하며,
노련한 정치인은
대중을 사로잡는 연설로 권력을 움켜쥔 후,
자신의 뜻을 기어이 관철시키고야 만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말에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라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었다.
시간이 지나버리면 들을 수 없고,
현장에 없으면,
즉 거리가 멀면 들을 수 없다는 문제 말이다.
인간이 글(문자 언어)을 발명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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