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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현실주의자들이 대부분 승리를 거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이기는 게임을 하기 때문이다.
질 수도 있는 게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들을
그들은 도저히 용납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인식의 지평은 좁아지고,
사고방식은 편벽고루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다 보니
생존을 보장받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일수록
그에 비례해 물질문명은 빠른 속도로 발달한다.
반면,
인식수준이 향상되는 속도는 처참한 수준이다.
그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이기는 게임의 영역이라기보다는
페어플레이의 영역에 가깝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실에서 이상주의자들이 발디딜 틈은
좀처럼 찾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전문화를 지향해야 하는데
이들은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고 탐구한다.
결과는 뻔하다.
십중팔구
실주의자들이 승리를 거둔다.

그런데
역사란 참 아이러니하다.
승리를 거둔 건 분명 현실주의자들인데
사람들의 숭앙을 받는 건 도리어 이상주의자들이다.

이유가 뭘까?
현실주의자들은
자신들을 세상에 맞춘다.
그러니 그들이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하는 바가 그리 클 리 없지 않은가?

반면,
이상주의자들은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세상이라는 옷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자신의 몸에 맞는 맞춤복을 입는다.
기성복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커다란 단점이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자기 혼자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물론,
남들과는 다른 옷을 입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을 당하기도 하고,
온갖 비난과 폄훼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세상 사람들은
그리고 역사는
그들의 손을 들어준다.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평생을 부자유스럽고 불편하게 살아왔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죽음이 임박해 오면
이내 지난 세월의 과오를 더듬기 시작한다.
초로와 같이 짧은 인생에서
한번쯤은 자신의 뜻을 관철시켜
자기 몸에 맞는 옷을 입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안타까움에 몸서리치며
서서히 침잠할 때,
과감히 기성복을 벗어던지고
맞춤복을 입고 살아온 사람들은
여유있는 미소를 머금은 채
편안히 영면에 든다.


역사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역사는
현실주의자들의 성공이 아니라
이상주의자들의 실패로 진보해왔다.

그러니
이기든 지든
온전히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갈 일이다.
마음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삶을 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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