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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만연한
극단적인 엘리트 주의는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가  반지성주의 사회 라는 사실을
절실히 방증하고 있다.

단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못한
무수히 많은 해답이 폐기 처리 되는
처참한 광경을 목도하면,
'의문'이 들어설 여지는 전연 없어 보인다.

문제는
'의문'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가
협소하고, 천박하면서도,
자괴감과 자기 모멸감으로 충만한
난폭한 신민들을 양산해 낸다는 사실에 있다.

토머스 홉스가
그의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언급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인 사회는
(The war of all against all)
지옥이나 축생과 다를 바가 없어,
인간계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단테가 <신곡>에서 묘사한
'연옥'보다 훨씬 비참할지도 모른다는
불미스러운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에서
소설가 조지 오웰이
<동물 농장>에서 묘사한
평등 사회가 오버랩 된다면 지나친 비하일까?

늙은 수퇘지 메이저 영감의 주도하에
매너 농장의 주인인 존스를 내쫓는
혁명을 감행한 후,
그 이름을 동물 농장으로 개명하지만,
메이저 영감이 죽은 후,
동물 혁명의 주도 세력인
나폴레옹과 스노우볼을 필두로 한
돼지 계층이 귀족화 되었고,
여타의 동물들은 철저하게 신민화 되었다.

철학자 니체는
그의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에서
평등에는 2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다른 사람을 모두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과소 평가하고, 비밀로 하고, 다리를 걸어서)
평등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자신을 끌어올리려고 하면서
(인정하고, 도와주고,
다른 사람의 성공을 기뻐하는) 평등이다.

나는
전자를 하향 평등,
후자를 상향 평등이라고 부르는데,
<동물 농장>에서
동물 혁명으로 그들이 건설한 사회는
철저한 하향 평등 사회 라고 할 수 있다.

작금의 사회 현실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의 활동을 통해
하드 웨어를 교체하려는 지난한 노력을
간단없이 지속하고 있지만,
인류와 역사의 기저를 형성하는
소프트 웨어인
인간의 '마음'은
역변과 쇠락의 일로를 걷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
역변이 아닌 정변의 향상일로를 걷기 위해서는
유행에 해당하는 정치와 더불어
불역에 상응하는 종교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나
기독교와 카톨릭에서 말하는 사랑이
상향 평등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핵심적인 가치이다.

하지만
현 시대는
세상을 걱정해야 할 종교가
도리어 세간의 근심 거리로 전락한 상황이라,
이마저 용이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지독한,
앞으로는 훨씬 더 끔직해질
이 풍랑 속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프랑스 최고의 석학인
자크 아탈리가
그의 저서 <언제나 당신이 옳다>에서 말하는
'자기 자신 되기(devenir soi)'를
온전히 실천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자등명 법등명.
스스로를 등불로 삼아 의지하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 의지해야 한다.

자기 스스로를 밝혀,
상향 평등의 초석을 마련하겠다는
간절한 염원을 가져야 한다.
각자도생에 길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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