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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애증의 감정을 응고해 둔 채, 
타자의 시선으로 그저 응망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격렬하게 분투 정진하는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우선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흰색 가운을 걸치고, 
현미경과 망원경이라는 합리성을 무기 삼아, 
세상에 기여하는 모습이 보인다. 

다음은 
정치인이 
국회에서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법에서 기인하는 권력이라는 의지를 바탕으로, 
중대 현안을 결정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그 다음은
소설가와 철학자가 
작업실과 연구실에서 
다소 자유로운 옷차림으로, 
지식과 지성을 탁마하는 과정을 목도한다. 

마지막으로
종교인이
사찰과 사원, 교회에서 
가사와 장삼, 사제복 등을 걸치고, 
신도와 신자들 앞에서 
믿음을 강조하는 광경을 본다. 

과학자는 합리성으로,
정치인은 의지로,
소설가와 철학자는 지식과 지성으로,
종교인은 믿음으로,
저마다 세상을 바꾸는데 전념하고 있다. 

문제는 
합리성, 의지, 지식과 지성, 믿음 가운데,
그 어떤 것을 통해서도
세상은 결코 변화시킬 수 없다는 데 있다. 

인간이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 뿐이다. 
부모가 교육을 통해 자녀를 변화시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데,
하물며 인간이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는 여전히 커다란 희망이 있다. 
전심을 통해
자신의 인식 하나 전환시킬 수 있다면,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세상은 자연스레 변화할 것이다. 

석가나 공자, 무하마드,
소크라테스와 예수.
그들이 바꾼 대상은
세상이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의 인식 그 자체였다. 
전식득지.
범인의 지식이 
성인의 지혜로 전이하는 것, 
인류의 희망은 바로 그 지점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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