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우리는 흑판 시대에 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은
새로 부임한 여 선생님이셨는데,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조는 학생들을 향해 
"look at the blackboard" 라고 
말씀하시곤 했고,
그 덕택에 
칠판이 영어로 blackboard 라는 사실을
난생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흑판에는 대개 백묵, 
즉 흰색 분필을 사용했다. 
검은 색(사실은 검푸른 녹색에 더 가깝다) 칠판에
흰색 분필을 사용하면,
명도의 대비를 통해 글씨가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상황이 다소 달라진 것 같다.
화이트 보드에 검정색 보드마카를 사용하는 비율이
점점 더 높아지는 추세다. 
흰색 바탕에 검정색 글씨를 써도,
역시나 명암은 뚜렷하게 대비가 되어,
문자를 인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욕실에서 양치질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뇌리를 관통했다.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풍요로운 삶을 향유하고 있지만, 
삶에 대한 만족도는 그다지 향상된 것 같지 않은데,
그 주된 원인이 
화이트 보드식 사고 방식에 있는 것은 아닐까?

흑판은
온통 검은 색으로 물들어 있어, 
그 위에 흰색 점을 하나만 찍어도,
마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서광이 비추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에 커다란 위안을 주지만,
화이트 보드는
순백의 만년설원이라, 
작고 검은 발자국 하나만 남겨도,
염오감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아닐까?

흑판식 사고는
우리에게 
빈곤 속에서도 풍성함을 관조할 미의식을 부여하고, 
풍요롭게 소유하기보다 풍성하게 존재할 수 있는 
염아한 안식처를 제공하지만, 
화이트 보드식 사고는
도리어 
풍요속의 빈곤을 초래해,
인간을, 

그가 소유한 물건의 노예로 
전락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직면한 현실에서
새벽이 도래하리라는 기대가
다소간 요원한 몽상이라 해도,
체념과 단념으로 일관하기 보다는,
자기 침잠의 시간 속에서 절차탁마해
광명의 효시가 되리라는,
흑판식 사고를 가지는 것이
생존에도 삶에도 유익할 것이다. 

칠흑 같은 어둠을 볼 것인가?
침잠한 한 줄기 빛을 볼 것인가? 
인생은 결국 
어떤 곳을 응망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