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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히라이 쇼슈의 
《좌선을 권하다》 라는 책의 한 부분인
<자유에 이르는 길>을 읽는 도중에,
갑자기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나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어린 시절에
구슬치기 놀이를 하던 장면을 상기했다. 
그러다
기억은 이내 또 다른 기억으로 전이했는데,
다름이 아니라, 
책상 위에 올려 놓았던 쇠구슬이
제멋대로 낙하해 바닥에 있던 나무에 떨어져 
나무의 한 쪽 끝부분이 움푹 파이고 말았던,
아찔했던 장면이었다. 

높은 곳에 있는 쇠구슬이
낮은 곳에 있는 나무 위로 떨어지면,
나무가 움푹 파인다. 
도대체 왜 그럴까? 
나는 과학자가 아니니
과학적이고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이야기를 늘어 놓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관찰을 토대로 한 직관을 언어로 번역해 보자면,
나무가 쇠구슬을 받아들일 정도로
유연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고정형의 나무에 비해 다소 유연한
스펀지 위에 쇠구슬을 떨어 뜨린다면 어떻게 될까? 
직접 실험을 해 본적이 없어서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아마도 스펀지는
자신의 몸을 수축시킴으로써
자신이 상처를 입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쇠구슬에게도
전혀 해를 가하지 않을 것으로 추측한다. 

호흡하지 않는 미물간의 관계에서도
옹졸하게 자신을 고집하는 
고정형은 상흔이 남는 반면, 
대범하게 자신을 내려 놓을 줄 아는
가변형은 작은 상해조차 입지 않는데,
하물며
우리 인간사는 두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고정형 사고 방식으로 중무장한
나무형 인간은
편협하고 고루한 인식의 틀에 얽매여
자승자박하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임이 
명약관화하고,
성장형 사고 방식으로 유연성을 확보한
스펀지형 인간은
격랑의 한 가운데에 덩그라니 놓여도
조류의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해 나아갈 것이 
자명하다. 

이처럼
세상이라는 쇠구슬이 자신을 향해 돌진할 때,
스스로를 나무처럼 고정시키면 상해를 입고,
스펀지의 유연한 자세를 체득하면
작은 상흔조차 남지 않게 되는 이치를
이해해 둘 필요가 있다. 

세상은 
어리석은 자에게 무수한 해를 가하지만, 
지혜로운 자에게는 작은 흠집 하나 남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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