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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춘다.
 비이성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따라서 
 모든 진보는 비이성적인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

192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아일랜드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다. 

언어와 논리의 견지에서 보면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얼토당토않은 말이다.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자신을 세상에 맞추기만 하는 것도 아닐테고, 
비이성적인 인간이라고 해서
세상을 자신에 맞추기만 할리도 만무하다. 

한 인간 안에는
이성과 비이성이 혼재해 있고,
양자 가운데
어느 한 쪽이 약간의 우위를 점할 뿐,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지배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불어
이성과 비이성은
한 인간의 성향에 따라 발현되는 성질이라기 보다는, 
그 인간이 
어떠한 환경과 조건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지극히 가변적인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의 말대로, 
이성적인 인간이라는 부류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더불어 
그런 인간들이 
자신을 세상이라는 틀에 끼워맞춘 결과로
이 세상의 질서가 유지된다 하더라도, 
비이성적인 부류의 인간들이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는 노력 따위를 할리가 없다. 
그들이 원하는 건
단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추상을
현실이라는 캔버스 위에 
구체적인 형태로 구현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조지 버나드 쇼는
이성적인 인간을 
현실에 순응하는 범인의 자화상으로,
비이성적인 인간을
이상을 추구하는 위인의 표상으로 
각각 설정했지만,
어느 한쪽 만으로는 
진보를 거론하기에 부적합해 보인다. 

비이성이라는 수려한 건물의 외관은 
이성이라는 견고한 토대 위에서 구축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온전히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과 비이성을 초월한 지점,
바로 거기에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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