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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에는 창조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우리가 창조적 인물의 전형으로 꼽는
미술 분야의 피카소,
음악 분야의 베토벤,
문학 분야의 헤밍웨이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 냈는가? 

피카소는 
전에 없던 새로운 '색'을 발명한 적이 없고,
베토벤은 
전에 없던 새로운 '음계'를 발명한 적이 없으며, 
헤밍웨이는 
전에 없던 새로운 '단어'를 발명한 적이 없다. 

하지만
피카소가 창조적이지 않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그의 창조성은 
기존의 색을 새롭게 조합한 방식에 있다.
베토벤이 독창적이지 않다고 혹평하는 사람도 없다.
그의 독창성은
기존의 7음계를 그만의 방식으로 사용한 것에 있다.
헤밍웨이가 창의적이지 않다고 힐난하는 사람은 없다. 
그의 창의성은
26개의 영어 알파벳을 독특하게 재조합한 것에 있다.  

그렇다면
글쓰기 라는 행위에서 말하는 창조
조금은 느슨한 의미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서는
창조 라는 용어를 
헤밍웨이 같은 소설가나
T.S. 엘리엇 같은 시인에게 
요구하는 상상력으로 한정하지 않고,
'글로 전달하고 싶은 생각을 어휘로 표현하는 능력'으로 확장해서 사용하고자 한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모든 사람은 천재다.
하지만 물고기들을 나무타기 실력으로 평가한다면
물고기는 평생 자신이 형편없다고 믿으며 살아갈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글쓰기 분야에서 창조적 재능을 가진 천재라고 생각한다. 

다만
'물고기'로 태어난 우리는
학교 교육 제도하에서
시험 점수 라는 '나무타기' 실력만으로
평가를 받아 왔기 때문에,  
창조적 글쓰기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없었던 것 뿐이다. 

학교를 오랫동안 다닌 사람들은
대개 비판적 기능이 발달한 반면에,
상대적으로 창조적인 기능은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그들이 
지도 교수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철저하게 의식하면서 글을 쓰기 때문이다.
그들은 장기간에 걸쳐
엄격한 지도 교수로부터
반드시 써야할 것과
절대로 써서는 안 되는 것을 
끊임없이 간섭받아 왔기 때문에,
자신이 창조적이라고 믿는 것보다는
지도 교수로부터 
비난을 면할 수 있는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조적인 글쓰기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창조적인 글쓰기
넓은 의미에서는
외부의 어떤 목소리에도 잠식당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내부로부터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귀기울여 
자유롭게 글을 쓰는 행위(free writing) 이고, 
좁은 의미에서는
무언가를 쓰기 전에
미리 사고의 엔진을 가동하는 행위이다.    

매사추세츠 대학 애머스트 캠퍼스 영문학과 교수인
피터 엘보 
그의 저서 『힘 있는 글쓰기(Writing With Power) (토트, 2014)에서
자유롭게 쓰기(free writing)
마음에 떠오르는 언어를 존중하고, 그것을 기록하고,
계속해서 떠오르는 언어를 존중하고 기록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자유롭게 쓰기
모든 글쓰기의 기초가 되는
가장 손쉬운 글쓰기 방법인 동시에 
글쓰기의 만능 열쇠라고 할 수 있다. 

자유롭게 쓰기의 목표는
훌륭한 글, 유려한 표현, 빠른 속도 등의
즉각적인 결과를 성취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기대도 갖지 않은 채 
연습 과정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데 있다. 
단기간에 급속히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기 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성장하는 연습 방법인 것이다.
하지만
만약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자유롭게 쓰기를 연습한다면,
단기간에 결과를 얻으려는 부담감에 짓눌려
오히려 
글쓰기의 효과가 반감되고 말 것이다.                  

자유롭게 쓰기를 연습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매일 10분 이건 20분 이건,
일정한 시간을 정해 두고 
지속적으로 종이 위에 글을 써 나가기만 하면 된다.  

자유롭게 쓰기의 초기 단계에서는 
이와 같은 기초 훈련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훈련의 보폭을 좁게 잡고
매일 10분씩 연습하는 것이,
보폭을 넓게 잡고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을 연습하는 것보다 
실력 향상에 훨씬 효과적이다. 
마치 매일 30분씩 걷기 운동을 하는 것이
일주일에 한 번 등산을 하는 것보다 
신체 단련에 효과적인 것처럼 말이다.

좁은 보폭으로 
기초 훈련을 지속한다면, 
의외로 다양한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심리적 측면에서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쓰는 행위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될 것이다.
또한 글쓰기의 기저에 자리하고 있는
심리적 어려움을 경감시킴으로써,
글을 더 쉽게 쓰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더불어 집중력의 향상이라는 
부가적인 실효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자신의 글에 대해 
일시적으로 판단을 보류함으로써, 
글을 계속 써 나가는 법을 터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여지없이 창조적 기능의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글감을 떠 올리고, 
종이 위에 생각을 구현하는 기술도 갖추게 될 것이다.
더불어 
생산 단계와 퇴고 단계를 
분리하는 법도 배우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총체적인 글쓰기 실력이 향상될 것이다. 


훌륭한 일은 일상에 기초한 경우가 많다.
피카소 <게르니카>(Guernica) 
물감 한 방울로부터 시작되고,
베토벤 《교향곡 9번 d 단조》 
음계 하나로부터 시작되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단어 하나로부터 시작된다.

"뛰어난 예술가는 
소질보다는 수행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말처럼,
탁월한 저술가 역시 
타고난 재능보다는 
수행을 통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글쓰기 분야의 첫 수행 단계인 
자유롭게 쓰기를 차분하게 수행하는 것,
이것이 탁월한 글쓰기를 위한 기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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