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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길에 
유명 배우 한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영면에 들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집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려는데
스무 병 짜리 작은 생수병 한 묶음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마 동생이 사다 놓은 모양이다.
물이 가득차 있는게 꽤나 위풍당당하다. 

방문을 열어 들어서려는 미세한 찰나,
반쯤 먹다 내팽개친 생수 한 병이 
퍼뜩 시야에 들어온다. 
"저게 바로 인생이라는 놈의 실체구나."

명경지수라 했던가.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이라는 말이 있듯,
물은 
그 속이 훤히 다 들여다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징명하게 분간할 수 있지만,
인간은
오탁으로 염오되어
그 계경이 불분하기에
한 치 앞도 가늠하기 난망하다. 

석가나 공자, 
무하마드나 예수가, 
사후 수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약동하는 생명력을 유지하고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까닭은, 
삶과 죽음의 실상을
일척안으로 
투철하게 간파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혹한 중우의 무리에 가담한
나로써는, 
염아한 그들의 혜안에 기대어 
제법실상을 관조하는 수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을 것이다. 

이따금씩
그들의 어깨에 올라
망념을 떨치고 
삶과 죽음의 
자그마한 진실이라도 대국한다면,
질박한 충족만으로도
만면에 미소를 머금을 것이다. 

염안한 그들의 가르침으로부터 
염오안을 가진 내가 깨달은 바는, 
인생은 무상하고
형상은 허망하며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예외 없이 사멸에 이른다는 
단순한 진리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저서 제목이기도 한
<영원의 철학>,
그 철학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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