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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에 앉아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세로로 가득찬 책들 위에
비스듬히 놓여 있는
얇은 책 한 권이 퍼뜩 시야에 들어온다.

일본의 소설가이자 철학자이며
문예평론가이기도 한 
고다 로한의 <노력론>이다.

책의 첫 페이지를 펼치니,
2017년 5월 17일 수요일
오후 11시 32분에 완독을 했다는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내 오랜 독서 습관 가운데 하나가
책을 읽은 시간과 장소를 표기해 두는 일인데,
별도의 장소를
기록하지 않은 사실로 추정해 볼 때,
첫 번째 완독 장소는
책상이 아니라 침상,
다시 말해 침대 위일 것이다.

밑줄 친 부분들을 훑어보다
<큰 뜻을 품고 살아가는 이유> 라는 항목에서
이내 눈도 마음도 호흡을 멈춘다.

"많은 사람들이
 척을 얻고자 노력했지만 촌을 얻는데 그치고,
 촌을 얻고자 노력했지만
 그 끝에는
 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뜻을 품기보다 결과를 먼저 품었기 때문이다.
 모든 위인들이 큰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위의 악비와 공명은
 평생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산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후세들이
 이 둘을 위인으로 존경하는 까닭은
 큰 결과가 아니라
 큰 뜻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일생을 맡길 만한 사업은 잠시 접어두고,
 먼저 일상적인 생활에서부터
 큰 뜻을 펼쳐야 한다."

 이 구절들 가운데
 특히

 '뜻을 품기 보다 결과를 먼저 품었기 때문이다' 와
 '인생을 맡길 만한 사업은 잠시 접어두고,
  먼저 일상적인 생활에서부터
  큰 뜻을 펼쳐야 한다.' 라는
  두 문장이 마음에 든다.

  첫 번째 문장을
  천천히 음미해 본다.

  처음에는 묵독으로
  다음에는 성독으로
  그 다음에는 미독으로
  또 명상독으로...
  문장의 맛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고다 로한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내 나름대로의 오독을 하자면
  이런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해 본다.

  세상에는
  미처 대의를 품기도 전에
  큰 업적을 성취하는 데만 골몰하는 인간과
  결과의 성패와는 무관하게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대극적인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전자는
  과욕이 과정에 전심할 힘을 탈취하기 때문에
  초라한 공적 만을 남기게 될 뿐이고,
  후자는
  비록 대의를 성취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대의를 품고 일에 임한 고결한 자세로 인해
  후대의 모범이 된다.

  두 번째 문장에 대해서는
  고다 로한이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설명을 덧붙인다.
 
 "한 가지 당부할 점은
  큰 뜻을 품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저히 미칠 수 없는 범위를 책정해
  함부로 도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자신의 성격을 정확히 파악해
  그 같은 성격이 유용하게 작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큰 뜻을 세우고
  최고의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최선을 다한다면
  아무리 평범한 인생이더라도
  세상을 위해 큰 공헌을 할 수 있다.
  아무리 협소한 분야일지라도
  그 안에서 최고가 되려는 마음가짐
  이것이 바로 큰 뜻의 진정한 의미다."

  지나치게 방대한 범위를 설정함으로써,
  자신의 통제와 역량이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지점에서
  허황된 일을 꿈꾸기보다,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고,
  역량이 미치는 범위 내에서
  견실하게 실력을 연마해 나아간다면,
  세상에 큰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중요하지만 간과하기 쉽고,
  현실적이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일의
  범위를 축소하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작은 노력을 퇴적해 가는
  지난한 과정을 지속하자.

  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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