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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십수 년간 알고 지내는 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꿈이
시인이 되는 것인지, 
소설가가 되는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여하튼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인데,
입버릇처럼 
"시간이 나면 나도 글을 한 번 써 봐야지." 하면서도
정작 시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십수 년의 시간이 흘러 버리고 말았다.

그의 꿈은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인데, 
도대체 왜 글을 쓰지 못할까? 
나의 개인적인 질문을 
보편적인 사람들의 범주로 확대해 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인 다수의 사람들은 
도대체 왜 글을 쓰지 못할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람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
목적 의식이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쓰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최종 결과물을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글쓰는 과정 자체에 집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글쓰기의 방법론이나 규칙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것도
사람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작용한다. 
글쓰기 라는 험산의 등정에는 
수많은 등산로가 있기 마련일텐데,
굳이 어느 하나의 행로만을 
고집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자신에게 적합한 등산로라면, 
전문가들의 말은 무시해도 좋지 않을까. 

미국의 교육학자인 마이크 로즈(Mike Rose, 1944~)
글을 쓰다가 막힌 사람과 
성공적으로 글을 써낸 사람을 비교하는 
흥미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글을 잘 쓰지 못하는 사람 
작문 수업에서 배운 전통적인 규칙을 준수한 반면,
글을 성공적으로 써낸 사람 
"이런, 이런, 나도 내가 다 망치고 있다는 거, 
규칙을 어기고 있다는 거 알아.
아무래도 난 올바르게 쓸 수가 없나봐." 
와 같은 말을 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글쓰기에는
창조적 사고 비판적 사고가 두루 필요한데,
작문 수업에서 가르치는 전통적인 글쓰기의 규칙들은
학생들의 창조적 사고를 억압하고,
비판적 사고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오히려 글쓰기에 방해가 된 것이다. 

우리에게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1925)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소설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Francis Scott Key Fitzgerald, 1896~1940)
일류의 지성이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두 가지의 상반된 사고를 동시에 마음에 품고도
정상적으로 그 기능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제시한다. 

나는 일류의 저술가가 갖추어야 할 조건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창조적 사고 엄격한 비판적 사고 
동시에 마음에 품고도
정상적으로 그 기능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일류의 저술가인 것이다. 

이 두가지의 상반된 능력은 
상충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상생한다고 말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우리가 창의적 사고를 배양한다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기술도 향상될 것이고,
반대로
비판적 사고를 연마한다면,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방법도 계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글을 생산하는 창조의 과정(초고의 과정)
글을 수정하는 비판의 과정(퇴고의 과정)
통합적인 과정으로
동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개별적인 과정으로 
순차적으로 찰핍하는 것이 좋은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나는 
정반대의 지적 과정인 이 두 과정을 
일원화하는 것보다는 분리해서 연마하는 것이
독창적이고 풍부한 동시에,
강인하고 조직적인 글을 써 내는 데 적합하다고 본다.
두 과정은 엄정한 의미에서 
역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창의적 사고가 지배적이면 
비판적 사고가 약화 되고,
비판적 사고가 지배적이면 
창의적 사고가 약화 되는 것이다.

첫 번째 단계인 생산 단계에서
우리는 창조적 사고를 가진 
창작자의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좋다.   
몸에 힘을 뺀 채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고,
빠른 속도로 초고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 단계의 주된 목표
최대한 많은 분량의 글을 생산하는 데에 있다.   
실제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산 단계는 글쓰기의 발아 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비언어적 감각 
의미를 가진 언어로 전화(轉化)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자신의 감각 자체를 신뢰하고, 
그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 단계인 수정 단계에서
우리는 비판적 사고를 가진 
편집자의 자세로 변역(變易)해야 한다. 
강인하면서 비판적인 자세를 취하고,
철저하게 퇴고에 몰두하는 것이다. 
전(前) 단계가 
양과 질의 향상을 목표로 했다면,
현(現) 단계에서는
질을 저하시키지 않는 한도 내에서
양을 감삭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옥석혼효(玉石混淆),
다시 말해 
'옥'과 '돌'이 섞여 있는 가운데,
좋은 것인 '옥'은 남기고, 
나쁜 것인 '돌'은 삭거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평범한 저술가들은
자유로운 창의적 사고가 과당해 엄격함이 부족하거나,
엄격한 비판적 사고가 과당해 자유로움이 부족하다. 
전자는 
속필(速筆)로, 
상당한 분량의 원고를 써 내기 때문에
글쓰기 자체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고,
고고한 탈속의 기풍에서 배어나는 멋스러움도 있지만,
날카롭게 평가하거나 감삭 및 삭거하는 데는 
다소간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반면에,
후자는
지필(遲筆)로, 
사소한 실수 하나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글쓰기 자체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토로한다. 
이들의 글은 
일견 정돈된 훌륭한 글처럼 보이지만, 
무미건조한 문체로 구성된
과도하게 응축된 집념의 덩어리로,
이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독자를 괴로움에 빠뜨리고 만다. 

이것이 작금의 우리가 처한 냉혹한 현실이지만,
여전히 우리는 
자유로운 창조적 사고 엄격한 비판적 사고 
동시에 마음에 품고도
정상적으로 그 기능을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을 꿈꾸어야만 한다.

손 닿지 않는 별을 향한 무모하리 만치 처절한 몸부림,
절망과 비탄에도 잠식당하지 않는 외마디 절규,
인간을 진정 고결한 존재로 재생시키는 것은
이와 같은 지난(至難)한 행로를 초연히 걸어가는 
청초하고 담대한 마음 가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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