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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재적으로 표출되는
행위를 토대로
내재적으로 은닉된
인간의 마음을 짐작해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구걸하는 거지의 마음으로
인생이라는 여정을 지속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추정해 볼 수 있다.

지하철을 탈 때,
이따금씩 
돈을 구걸하는 거지들을
마주할 기회가 있는데,
그들의 몸짓과 표정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심리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돈을 구걸할 때 표출되는,
돈을 얻겠다는 '희구심'이고,

다른 하나는
행인에게
동냥을 얻고 나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돈을 얻었다는 '만족감'이다.

다시 말해,
거지의 생존을 지탱해 주는
두 가지의 큰 기둥이 되는 마음은
얻겠다는 마음인 '희구심'과
얻었다는 마음인 '만족감'이다.

구걸을 시작해서
동냥을 얻기까지는
'희구심'이 작동하기 때문에
불안과 걱정으로 신음할테고,
동냥에 성공한 후 
다음 구걸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찰나의 '만족감'만이 있을 뿐
또 다른 '희구심'이 작용하기 때문에,
간단없는 고뇌가 엄습해
심장이 바짝바짝 조이고, 
고통에 몸서리치는
악순환을 반복해야만 할 것이다. 

돈을 구걸해 연명하는
거지의 인생과 다소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일반 사람들의 삶을 지지하는 마음 역시
'희구심'과 '만족감'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왜
단 한 잔만으로도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천연암반수와 같은
'만족감'에 머물지 못하고,
마실수록 갈증을 유발하는
바닷물과 같은
'희구심'에 사로잡혀
고해에서 허우적대는가?

안외구안,
눈 바깥에서 눈을 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에는
가공하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에 비견할 만한
무한한 잠재력이 있는데,
인간의 눈은
잠시도 내면을 응시하는데 머물지 못하고
끊임없이 외부 세계를 향해 유랑하고 있기에,
자승자박,
스스로에게 괴로움을 전가하고 만다.

그렇다면
외계를 응망한 결과로 얻게 되는 외물은
인간에게 장기간 지속가능한 '만족감'을
부여할 수 있을까?

안중착설,
밖으로부터 유입된 것은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 해도,
'눈 안에 티끌'
다시 말해,
눈병을 유발하는 요인이 될뿐,
결코 '만족감'을 선사하지는 못한다.

인류의 역사가
외견상으로는 대단해 보이지만,
마음의 측면에서 관조해 보면,
스스로가 설정한 희구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노심초사하다,
종국에 이를 때까지
만족감이라는 신기루 근처에는
범접할 수조차 없는,
미혹의 역사에 불과하다.

눈을 크게 뜨면
눈 밖의 세상에서 무언가를 구하게 되지만,
눈을 지긋이 감으면
눈 안의 마음에서 자신의 힘을 발견하게 된다.

눈 바깥에서 눈을 구하지 않을 때,
비로소
육안을 초월한 지점에서
혜안을 통해 명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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