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삶이란 바닷가 백사장에 앉아, 나무 막대기로 모래에 글쓰를 새기는 과정과 같다. 한참을 공들여 새겨 놓은 글씨는 해수가 백사장에 유입되기라도 할라치면, 이내 유흔도 없이 마멸되고 마는데, 인간은 이에 전혀 개의치 않고 일평생 쉼 없이 중노동을 지속하기만 할 뿐이다. 한편으로는 그 지난한 행위를 간단없이 지속하는 성실함이 부지불식간에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휴지기 없는 삶의 방식이 참회와 개전 없는 자아상을 잉태했고, 빈약한 정신세계와 근시안적 태도를 초래했다는 가련하고 애잔한 감상을 일게 한다. 서른 세 살의 어느 여름날, 오랜 친구들과 함께한 경포대에서, 파도가 모래 위에 새긴 글씨를 삽시간에 마모하는 광경을 목도하면서, 이제 그만 막대기를 내려 놓고 백사장 밖으로 뛰쳐나..
외재적으로 표출되는 행위를 토대로 내재적으로 은닉된 인간의 마음을 짐작해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구걸하는 거지의 마음으로 인생이라는 여정을 지속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추정해 볼 수 있다. 지하철을 탈 때, 이따금씩 돈을 구걸하는 거지들을 마주할 기회가 있는데, 그들의 몸짓과 표정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심리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돈을 구걸할 때 표출되는, 돈을 얻겠다는 '희구심'이고, 다른 하나는 행인에게 동냥을 얻고 나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돈을 얻었다는 '만족감'이다. 다시 말해, 거지의 생존을 지탱해 주는 두 가지의 큰 기둥이 되는 마음은 얻겠다는 마음인 '희구심'과 얻었다는 마음인 '만족감'이다. 구걸을 시작해서 동냥을 얻기까지는 '희구심'이 ..
첨단 기술과 고도화된 물질 문명이 인간 사회에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의 물질적 풍요로움과 편의성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도리어 인간은 풍요와 편의를 얻는 대가로, 과도한 긴장과 불안이라는 스트레스의 노예로 전락해, 만성 피로 증후군에 시달리며, 이에 대해 간곡히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직을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귀촌이나 귀농을 결심하기도 하며,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이민을 감행하기도 한다. 하나의 동일한 사안에 대해 사람들이 대응하는 방식은 개개인의 환경이나 성격, 취향이나 가치관의 차이 만큼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염오된 세계에 내주하는 인간이 세상에 대응하는 방식은, 눈 앞의 현실을 거부한 채 또 다른 세계로 탈주하는, 이른바 외부 세계를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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