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M: 느리고 깊은 글쓰기

나는 왜 이렇게 어리석을까? 내 인생은 왜 이리도 괴로울까? 하고 감내하기 어려운 진통을 겪을 때마다 성장과 성숙의 문이 열렸다.

음악이 아름다운 것은 음계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고, 그림이 감동을 주는 것은 색조에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글이 누군가에게 심오한 깨달음을 전달한다면 그 역시 문법 규칙이 빚어낸 것일 공산이 크다. 모든 창조와 자유는 제약과 구속의 산물이다.

서늘한 바람이 흉중에 불어와 이따금씩 마음이 공허할 때, 삶의 무상함이 폐부를 찔러 냉기가 혈류를 관통할 때, 광막하게 펼쳐진 불모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삶의 여정이 녹록지 않을 때, 그때마다 인간을 일으켜 세우는 게 무엇인지 반추하고 천착해 보면, 주어진 일, 해야할 일, 감내할 수 있는 일을 하고 떠나야겠다는 사명감임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쇠를 벼리듯 스스로를 단련해 주어진 책무를 다하자. 사명을 다하자.

“주의 깊게 관찰하고 연구하다 보면 자신이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아는 것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다.” 클로드 베르나르의

껍질을 벗기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바나나가 흰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란 껍질을 보고 하얀 알맹이를 유추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건강한 육체가 쇠약해지기는 쉽지만, 나약한 정신이 강건해지기는 어렵다. 약동하는 젊은 정신을 갖는데는 일평생이 걸린다.

육체는 수도관 처럼 닳아 서서히 사그라들지만, 정신은 수도관 속을 유유히 흐르는 물처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기실 육체와 정신은 이원화 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버려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조각가가 망치질로 불필요한 부분을 떼어내고, 편집자가 빨간펜으로 불필요한 말을 잘라내는 것처럼 인생에서 불필요한 껍데기들을 걷어내고 가장 중요한 본질에 집중하자. 껍데기를 버리는데는 단호한 결단력과 담대한 용기가 필요하다. 지난한 과정이지만 매일 매일 버리는 연습을 하자.

희망이라는 말 만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말이 또 있을까? 희망은 현실이 녹록지 않음을 방증하는 말이자, 음울하고 음산한 삶의 현장에서 비탄한 최후일각을 맞이하는 이들을 위한 말이다. 국어사전에서 희망이 사라진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 더이상 희망이라는 단어가 오르내리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이 도래하기를 희망한다. 희망이 없다는 건 좋은 일이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를 가질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견해가 잘못된 것이라고 판명된다면, 언제든지 스스로의 견해를 버릴 수 있는 유연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일관성을 추구하는 것이 마치 양심과 인격을 지키는 것인양 과장하고 떠벌리기를 좋아하지만, 실상은 향상의 길이 요원하다는 사실을 일찍이 간파하고, 답보와 정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느라 하는 수 없이 일관성 있는 인간으로 남은 것 뿐이다. 견해를 가지되 견해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