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길에 유명 배우 한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영면에 들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집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려는데 스무 병 짜리 작은 생수병 한 묶음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마 동생이 사다 놓은 모양이다. 물이 가득차 있는게 꽤나 위풍당당하다. 방문을 열어 들어서려는 미세한 찰나, 반쯤 먹다 내팽개친 생수 한 병이 퍼뜩 시야에 들어온다. "저게 바로 인생이라는 놈의 실체구나." 명경지수라 했던가.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이라는 말이 있듯, 물은 그 속이 훤히 다 들여다 보일 정도로 맑고 깨끗해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징명하게 분간할 수 있지만, 인간은 오탁으로 염오되어 그 계경이 불분하기에 한 치 앞도 가늠하기 난망하다. 석가나 공자, 무하마드나 예수가, 사후 수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약동하는 생..
경영학은 본래의 전공 분야와는 무관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분야 가운데 하나 라고 여겼기 때문에, 지난 15년 간 족히 5백 여 권은 읽었던 것 같다.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 게리 해멀, 세스 고딘, 오마에 겐이치 등의 사상가와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허브 켈러허, 마쓰시타 고노스케, 이나모리 가즈오, 손정의, 마윈 등의 경영자들의 책을 병행해서 읽어 온 경험을 토대로, 현 시점에서 경영학을 정의하자면, '취사선택' 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집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해, 좋은 것, 쓸 만한 것은 남기고, 나쁜 것, 사용하기에 부적합한 것은 버리는 학문이 경영학이고, 이를 응용해서 운영하는 행위가 경영 이라는 말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의 조류를 거스르지 않고, 그 흐름 위에..
생사의 경계를 명징하게 확언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평균 수명이 80세 전후 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불어 스스로가 그 평균의 범주에 속한다고 가정하면, 생명의 모래 시계가 낙하를 멈추고, 적정의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대략 45년 여의 시간이 남았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가치 있을까를 생각하다, 문득 젊음의 혈맥을 관통하는 '해방' 이라는 단어와 조우하게 되었다. 전혀 낯설지 않을 뿐더러, 어감도 상당히 좋다. 해방이라... 인도의 수행자들은 윤회의 고통 속에 허덕이는 인류에게 생사 해방의 길을 제시했고,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육체적, 정신적 압제로 신음하는 노예들에게 노예해방선언으로 자유를 부여했다면, 내가 실행할 수 있는 해방에는 어떤 것이 있..
인간의 삶이란 바닷가 백사장에 앉아, 나무 막대기로 모래에 글쓰를 새기는 과정과 같다. 한참을 공들여 새겨 놓은 글씨는 해수가 백사장에 유입되기라도 할라치면, 이내 유흔도 없이 마멸되고 마는데, 인간은 이에 전혀 개의치 않고 일평생 쉼 없이 중노동을 지속하기만 할 뿐이다. 한편으로는 그 지난한 행위를 간단없이 지속하는 성실함이 부지불식간에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휴지기 없는 삶의 방식이 참회와 개전 없는 자아상을 잉태했고, 빈약한 정신세계와 근시안적 태도를 초래했다는 가련하고 애잔한 감상을 일게 한다. 서른 세 살의 어느 여름날, 오랜 친구들과 함께한 경포대에서, 파도가 모래 위에 새긴 글씨를 삽시간에 마모하는 광경을 목도하면서, 이제 그만 막대기를 내려 놓고 백사장 밖으로 뛰쳐나..
외재적으로 표출되는 행위를 토대로 내재적으로 은닉된 인간의 마음을 짐작해 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구걸하는 거지의 마음으로 인생이라는 여정을 지속한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추정해 볼 수 있다. 지하철을 탈 때, 이따금씩 돈을 구걸하는 거지들을 마주할 기회가 있는데, 그들의 몸짓과 표정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심리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돈을 구걸할 때 표출되는, 돈을 얻겠다는 '희구심'이고, 다른 하나는 행인에게 동냥을 얻고 나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돈을 얻었다는 '만족감'이다. 다시 말해, 거지의 생존을 지탱해 주는 두 가지의 큰 기둥이 되는 마음은 얻겠다는 마음인 '희구심'과 얻었다는 마음인 '만족감'이다. 구걸을 시작해서 동냥을 얻기까지는 '희구심'이 ..
첨단 기술과 고도화된 물질 문명이 인간 사회에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의 물질적 풍요로움과 편의성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도리어 인간은 풍요와 편의를 얻는 대가로, 과도한 긴장과 불안이라는 스트레스의 노예로 전락해, 만성 피로 증후군에 시달리며, 이에 대해 간곡히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이직을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귀촌이나 귀농을 결심하기도 하며,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이민을 감행하기도 한다. 하나의 동일한 사안에 대해 사람들이 대응하는 방식은 개개인의 환경이나 성격, 취향이나 가치관의 차이 만큼이나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염오된 세계에 내주하는 인간이 세상에 대응하는 방식은, 눈 앞의 현실을 거부한 채 또 다른 세계로 탈주하는, 이른바 외부 세계를 변경..
(Ris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 라는 대작을 집필한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글쓰기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글을 쓰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생각하는 습관에 익숙하지 못했고, 창작의 기술에 능숙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책을 쓸 결심을 했다." 기번의 이 말은 파나소닉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3가지 성공 비결과 그 궤를 같이한다. 마쓰시타는 자신의 성공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하늘로부터 3가지 은혜를 받았다. 가난한 것, 허약한 것, 못배운 것이 그것이다. 가난했기에 부지런히 일했고, 허약했기에 틈틈이 건강을 돌봐 90세가 넘도록 살아 있고, 못배웠기에 늘 무언가를 배우려고 노력했으니 이것이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에드워드 기번..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춘다. 비이성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따라서 모든 진보는 비이성적인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 192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던 아일랜드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다. 언어와 논리의 견지에서 보면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얼토당토않은 말이다.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자신을 세상에 맞추기만 하는 것도 아닐테고, 비이성적인 인간이라고 해서 세상을 자신에 맞추기만 할리도 만무하다. 한 인간 안에는 이성과 비이성이 혼재해 있고, 양자 가운데 어느 한 쪽이 약간의 우위를 점할 뿐,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완전히 지배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불어 이성과 비이성은 한 인간의 성향에 따라 발..
인생에는 바다를 항해하는 순간과 육지에 정박하는 순간이 있다. 훌륭한 항해사는 출항 전에 먼저 정박을 고려할 것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바다에 머물 것인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왕복할 것인지, 어떻게 부수적인 준비를 할 것인지에 대해 사전에 만전을 기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생을 먼 발치서 관망하면, 정박 준비를 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 같다. 승선 전에 하선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관성의 법칙에 의해 평생을 바다 위에서 부유하거나 표류하고 만다. 일과 휴식의 경계, 채움과 비움의 구별, 밤과 낮의 분간이 불명확한 상태에서 철저하게 소모되고, 방전되며, 고갈되다 이윽고 사멸에 다다르고 만다. 가련하고, 음울하며, 애잔하기까지 하다. 세계 정복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불철주야 노심초사하던 알렉산..
우리는 흑판 시대에 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은 새로 부임한 여 선생님이셨는데, 수업 시간에 떠들거나 조는 학생들을 향해 "look at the blackboard" 라고 말씀하시곤 했고, 그 덕택에 칠판이 영어로 blackboard 라는 사실을 난생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흑판에는 대개 백묵, 즉 흰색 분필을 사용했다. 검은 색(사실은 검푸른 녹색에 더 가깝다) 칠판에 흰색 분필을 사용하면, 명도의 대비를 통해 글씨가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상황이 다소 달라진 것 같다. 화이트 보드에 검정색 보드마카를 사용하는 비율이 점점 더 높아지는 추세다. 흰색 바탕에 검정색 글씨를 써도, 역시나 명암은 뚜렷하게 대비가 되어, 문자를 인식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욕실에서 양치질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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